퇴근하고 고기 구워 먹는 날, 냉장고에 있는 와인 중 뭘 꺼내야 할지 매번 고민이었다. 삼겹살엔 화이트가 어울린다는 말도 있고, 소고기엔 무조건 진한 레드라는 말도 있고. 실제로 여러 자리에서 고기 구이와 곁들여본 와인 네 병을 정리해봤다. 삼겹살, 한우 구이, 스테이크까지 — 어떤 병이 어떤 고기와 잘 붙었는지 기록 그대로 옮긴다.왜 고기엔 레드가 국룰일까레드 와인의 떫은맛, 즉 타닌은 고기의 지방과 만나면 입안을 헹궈주는 역할을 한다. 지방이 타닌을 부드럽게 감싸고, 타닌은 다음 한입을 다시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식이다. 그래서 기름진 부위일수록 타닌이 단단한 와인이 잘 붙고, 담백한 부위엔 타닌이 약한 와인도 충분하다. 아래 세 자리는 그 원리를 그대로 확인한 경험이었다.삼겹살엔 아마로네 스타일 — ..
이탈리아 와인 하면 십중팔구 바롤로나 키안티부터 떠올립니다. 그런데 정작 마셔보면 "이게 진짜 이탈리아 와인이야?" 싶은 순간이 오는 건 오히려 그 옆동네들일 때가 많습니다. 바롤로와 같은 네비올로 품종인데 스타일이 다른 바르바레스코, 산지오베제의 정점이라 불리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그리고 레드 명가인 줄 알았는데 화이트도 만드는 가야까지. 실제로 마셔본 세 병을 기준으로 이탈리아 와인 지도를 다시 그려봤습니다.바르바레스코 — 바롤로의 그늘에 가려진 피에몬테의 왕바롤로랑 뭐가 다른가요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는 둘 다 피에몬테에서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듭니다. 흙과 토양 구성이 비슷한 지역이라 종종 "형제 와인"으로 묶이는데, 통상적으로 바롤로가 더 무겁고 오래 숙성이 필요한 스타일이라면 바르바레스코는 상대..
면세점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산 와인, 마개를 열자마자 뭔가 아쉬웠던 적 있으신가요? 분명 좋은 와인인데 향이 잘 안 올라오는 느낌. 이럴 때 정답은 두 가지입니다. 기다리거나, 흔들거나.이번 글은 실제로 향이 안 열린 와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그 반대로 디캔팅을 아예 필요 없었던 화이트 와인 이야기까지 담았습니다. 광고나 협찬 없이 인스타그램(@wine.with.u)에 남겨온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향이 "닫혀 있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와인,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보르도 블렌딩처럼 탄닌이 단단한 레드는 어릴 때 향이 눌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 속에서 산소 없이 잠들어 있던 향 분자들이 공기와 만나야 비로소 퍼지기 시작하는데, 코르크를 딴 직후에는 그 시간이 부족한 거죠.문제는 레..
와인샵에서 프랑스·이탈리아·미국 코너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구석에 조지아나 오스트리아 라벨이 한두 병 꽂혀 있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손이 잘 안 갑니다. 이름부터 낯설고, 어떤 맛일지 감이 안 오니까요. 그런데 인스타그램 @wine.with.u 기록을 다시 훑어보다가, 이렇게 손이 잘 안 가는 산지 병들을 실제로 따서 마신 기록이 꽤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조지아,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스페인 리오하 알라베사, 그리고 산지를 특정하지 않은 내추럴와인 한 병까지. 오늘은 이 네 병을 통해 "잘 모르는 산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정리해봤습니다.왜 항상 같은 산지만 고르게 될까이유는 단순합니다. 실패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보르도나 나파처럼 이름이 익숙한 산지는 대충 고나 실패 확률이 낮다는 ..
중식당에 가면 늘 고민이 생깁니다. 화이트로 갈지 레드로 갈지, 아니면 그냥 맥주로 타협할지. 최근 일주일 사이 완전히 다른 두 자리에서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는 파인다이닝 코스에서 다섯 잔을 순서대로 받은 자리였고 다른 하나는 중식당에서 레드 와인 한 병을 골라 간 자리였습니다. 두 경험을 나란히 놓고 보니 "음식에 맞춰 와인을 고른다"는 말이 실제로 뭘 뜻하는지 감이 잡혀서, 오늘은 그 기록을 정리해봅니다.1. 파인다이닝 코스, 다섯 잔이 순서대로 나왔습니다레스토랑 주은에서의 저녁 자리였습니다. 코스에 맞춰 와인이 순서대로 나왔는데, 스타일 변화가 뚜렷했습니다.Bonnet-Ponson Cuvée Perpétuelle Extra Brut Champagne 2015 (샹파뉴, 스파클링) — ..
일식 다이닝바 주방 앞에 앉아 셰프가 도마질하는 걸 구경하면서 화이트 와인을 마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분당 정자동의 오마카세 바 '신독'에서 그런 저녁을 두 번 보냈습니다. 한 번은 뫼르소, 한 번은 크룩 샴페인이었죠. 그리고 얼마 뒤 판교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홍합찜에 이탈리아 화이트를 곁들이고 나서야 '화이트 와인은 그냥 가볍게 마시는 술'이라는 제 편견이 완전히 깨졌습니다.이번 글은 실제로 마셔본 화이트 와인·샴페인 4병과, 비교 삼아 함께 마신 레드 1병을 음식과 함께 기록한 페어링 노트입니다. 산지도 부르고뉴, 피에몬테, 베네토, 샹파뉴, 바로사 밸리로 제각각이라 "화이트 와인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을 가진 분들께 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1. 신독에서 만난 뫼르소 — 셰프의 손끝과 ..
샴페인 한 잔에 99,000원 — 잘 쓴 걸까, 그냥 비싼 걸까호텔 샴페인 아워는 인당 요금이 정해져 있고, 시간 제한이 있고, 심지어 예약도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있을 텐데, 실제로 다녀와보면 그 값이 뭘 사는 건지 감이 잡힙니다. 최근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샴페인 아워를 다녀왔고, 얼마 전에는 집에서 다른 샴페인을 땄습니다. 같은 술이지만 마시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니, 둘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나은 선택인지 정리해봤습니다.결론부터 말하면 둘은 애초에 같은 걸 놓고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는 '경험'을 사는 것이고 하나는 '술'을 사는 것이라,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답이 갈립니다. 아래에서 각각 실제로 마셔본 기록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그랜드 하얏트 서울 갤러..
화이트 와인 라벨을 보다 보면 품종 대신 낯선 지명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Valdeorras", "Santenay" 같은 이름을 보고 이게 무슨 맛일지 감을 잡기는 쉽지 않습니다.최근 한 자리에서 스페인·프랑스 두 나라, 세 산지의 화이트(와 인접 스타일) 와인을 나란히 마셔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라벨에 산지 이름만 적혀 있어도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실제 마신 기록으로 정리해봤습니다.이 글에서 다루는 세 병Telmo Rodriguez, Branco de Santa Cruz — 스페인 발데오라스(Valdeorras)Bertrand Bachelet, Santenay Blanc — 프랑스 부르고뉴 산테네(Santenay)Schoenheitz, Riesling Linsenberg — 프랑스 알자스..
와인 라벨은 정보가 빽빽한데 정작 필요한 게 어디 적혀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나라마다 규칙이 달라서, 하나를 외워도 다음 병에서 또 막힙니다.그래서 규칙을 나열하는 대신, 제가 실제로 마신 병 다섯 개를 예로 들어 라벨에서 뭘 봐야 하는지 정리해봤습니다.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 신대륙 vs 구대륙라벨의 큰 글씨가 무엇이냐로 갈립니다.신대륙(미국·칠레·아르헨티나·호주·뉴질랜드) → 품종을 크게 씁니다. "Malbec", "Pinot Noir"처럼.구대륙(프랑스·이탈리아·독일·스페인) → 산지를 크게 씁니다. 품종은 아예 안 적힌 경우도 많습니다.구대륙이 품종을 안 적는 이유는, 그 지역에서 무슨 품종을 쓰는지가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산지 이름이 곧 품종 정보인 셈입니다.예시 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