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와인샵에서 직원분이 "이건 타닌이 좀 있고 오크 뉘앙스가 잡히는 스타일이에요"라고 설명해줬는데, 고개는 끄덕였지만 사실 하나도 못 알아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라벨 읽는 법은 검색하면 잘 나오는데, 정작 마시고 나서 "이 맛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아무도 안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사전식 설명 대신, 제가 실제로 마시고 기록해둔 여섯 병을 펼쳐놓고 그 안에 등장한 표현들만 골라 풀어보려고 합니다. 아래 인용은 전부 인스타그램 @wine.with.u에 그날 그대로 적어둔 메모입니다. 다듬지 않은 반말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먼저 표부터 — 시음노트에 제일 자주 나오는 표현 12개

    본문을 읽기 전에 이 표만 저장해두셔도 와인샵 대화의 절반은 통합니다. 오른쪽 칸은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실제로 그 표현이 나왔을 때 무슨 뜻이었는지를 적었습니다.

    표현 분류 실제로는 이런 뜻
    플럼(plum) 과일 향 잘 익은 자두. 검붉은 과일 계열 중 가장 흔하게 잡히는 향
    블랙베리·다크프룻 과일 향 플럼보다 더 진하고 어두운 쪽. 색이 짙은 레드에서 자주 나옴
    스트로베리 과일 향 밝고 가벼운 붉은 과일. 피노 누아 계열에서 특히 자주
    트로피컬 과일 향 파인애플·망고 같은 열대 과일. 주로 화이트에서
    그린애플 과일 향 덜 익은 사과의 새콤함. 산도가 높다는 신호
    오크 숙성 향 나무통 숙성에서 오는 향. 포도 자체의 향이 아님
    바닐라 숙성 향 오크와 거의 세트로 등장. 달콤한 뉘앙스
    버터 숙성 향 주로 오크 숙성 샤르도네. 크리미한 질감까지 포함
    가죽·감초 3차 향 과일이 아닌 향. 시간이 지나며 올라오는 복합적인 층
    타닉(tannic) 촉감 맛이 아니라 입 안이 조이는 감촉. 떫은 감을 떠올리면 가까움
    산(acid) 촉감 침이 고이게 하는 새콤함. 낮으면 밋밋, 높으면 상큼
    스파이시 기타 후추·정향 같은 향신료 뉘앙스. 매운맛이 아님

    과일 향 — "플럼"은 대체 무슨 향일까

    시음노트의 절반 이상은 과일 이름입니다. 처음엔 "와인에서 왜 자두 맛이 나?" 싶었는데, 정확히는 포도 자체가 만들어내는 향의 방향을 가장 가까운 과일에 빗대는 것입니다. 자두를 넣은 게 아니라, 자두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라는 뜻이죠.

    아르헨티나 멘도사의 카테나 알타 말벡 2018을 마시면서 적어둔 메모가 이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처음엔 plum, blackberry, dark fruit.
    조금 더 두니 잘 익은 strawberry, tropical, bubblegum
    그다음 leather, tannic, acid.

    엄청 변화무쌍하다. 재미있다.
    이 가격에 이 퀄리티, 만족.

    여기서 중요한 건 순서입니다. 처음엔 어두운 과일(플럼·블랙베리) → 시간이 지나니 밝은 과일(스트로베리·트로피컬) → 마지막엔 과일이 아닌 향(가죽)으로 넘어갑니다. 시음노트에 과일 이름이 여러 개 나열돼 있다면, 그건 "이 향이 다 동시에 난다"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이렇게 바뀌었다는 기록일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생산자라도 빈티지가 다르면 표현이 달라집니다

    같은 카테나 집안의 자파타 말벡 아르헨티노 2022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22빈은 감초맛이 잘 느껴짐.
    플럼. 블랙베리. 오크. 바닐라. 가죽향.
    뽕따로 마셨는데도 맛있었음.

    플럼·블랙베리는 겹치지만 여기엔 감초가 먼저 나옵니다. 같은 품종·같은 지역이어도 해마다 표현이 달라진다는 뜻이고, 그래서 시음노트는 "이 와인은 원래 이런 맛"이 아니라 "그날 그 병은 이랬다"에 가깝습니다.

    오크·바닐라·버터 — 포도가 아니라 통이 만든 향

    초보 때 가장 헷갈렸던 게 이 계열입니다. 오크·바닐라·버터는 포도에서 오는 향이 아니라 나무통에서 숙성하는 과정에서 옮겨붙는 향입니다. 그래서 "오크 향이 강하다"는 말은 품종 설명이 아니라 양조 방식 설명에 가깝습니다.

    미국 러시안 리버 밸리의 시부미뇰 샤르도네 2019 메모가 딱 교과서였습니다.

    시부미뇰 샤르도네
    버터. 오크. 바닐라. 트로피컬.
    맛있었다!

    네 단어 중 세 개(버터·오크·바닐라)가 통에서 왔고, 과일 향은 트로피컬 하나뿐입니다. 오크 숙성 샤르도네가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면 이 조합을 기억해두시면 됩니다. 반대로 오크를 안 쓴 샤르도네는 이 세 단어가 빠지고 사과·시트러스 쪽으로 갑니다. 같은 품종인데 완전히 다른 술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샴페인 쪽에서도 비슷한 축이 보입니다. 프랑스 샹파뉴 그랑 크뤼의 드레몽 에페메르 018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린애플, 견과류 향 맛
    에페메르 괜찮았다.

    그린애플은 산도가 살아 있다는 신호, 견과류는 효모와 함께 숙성하는 과정에서 붙는 향입니다. 시음노트가 두 줄뿐이어도 "새콤함 + 숙성 뉘앙스"라는 골격은 그대로 읽힙니다.

    타닌과 산도 — 이건 맛이 아니라 감촉입니다

    가장 자주 오해받는 단어가 타닌입니다. 타닌은 향이나 맛이 아니라 입 안 점막이 조여드는 느낌, 즉 촉감입니다. 떫은 감을 먹었을 때 혀가 까끌해지는 그 감각이 가장 가깝습니다.

    앞의 카테나 알타 메모 마지막 줄이 "leather, tannic, acid"였던 걸 떠올려보시면, 향(가죽) → 촉감(타닌) → 촉감(산도) 순으로 관찰이 이동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시음노트를 쓸 때도 이 순서가 편합니다.

    • : 코로 맡아서 떠오르는 과일·향신료·나무
    • : 단맛, 신맛 같은 실제 미각
    • 촉감: 타닌의 조임, 알코올의 화한 느낌, 무게감(바디)
    • 여운: 삼킨 뒤 얼마나 오래 남는지

    이 네 칸만 채우면 시음노트가 됩니다. 어려운 단어를 쓸 필요가 전혀 없고, 실제로 위 인용들도 전부 쉬운 단어로만 되어 있습니다.

    같은 병도 상태에 따라 노트가 바뀝니다

    시음 용어를 배우고 나서 오히려 더 조심하게 된 부분이 있습니다. 노트에 적힌 표현이 와인의 본질이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러시안 리버 밸리의 코스타 브라운 피노 누아 2021을 마셨을 때가 그랬습니다.

    어제 사실 이 와인을 마시려던 계획은 없었는데, 보관을 잘못하는 바람에 고온에 노출되어 함께 보관중이던 다른 와인들도 괜찮을까싶어서 코스타 브라운을 먼저 까봤다.

    아…. 뭔가 맛이 간건지, 더웠던 해라는 2021년도 특유의 맛과 향(뭔가 더위에 찌든 맛과 향, 살짝의 시큼한 향/맛도.)이 나서 고온 노출의 문제인지, 21년도 빈티지의 특징인지 고민하면서 2/3 가량은 매우 아쉽게 마셨더랬다.

    잉 그런데 오늘 다시 마셔보니 맛있다. 향도 좋다. 😳

    플럼. 스트로베리. 오렌지. 파인애플. 스파이시.

    1/3 가량이라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다.

    첫날 노트만 남겼다면 "시큼하고 찌든 향"으로 기록됐을 병이, 하루 뒤엔 "플럼·스트로베리·오렌지·파인애플·스파이시"가 됐습니다. 시음 용어를 배우는 목적이 맞히기가 아니라 변화를 기록하기인 이유입니다.

    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질랜드 말버러의 러시안 잭 소비뇽 블랑 메모는 이렇게 짧습니다.

    가볍게. 차게 해서 마시기 좋은 화이트.
    블루베리와 조합이 괜찮았다. 🥂

    "가볍게"는 바디, "차게 해서"는 서빙 온도, 뒷부분은 페어링입니다. 단어 세 덩어리로 시음노트의 뼈대가 다 들어가 있는 셈이죠. 처음 쓰실 때는 이 정도 분량이면 충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향을 못 맡겠는데 제가 둔한 걸까요?

    아닙니다. 향을 못 맡는 게 아니라 이름을 못 붙이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 표에서 다섯 개만 골라 "이 중에 뭐가 제일 가깝지?" 하고 좁혀가면 훨씬 쉬워집니다.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내 기준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Q. 시음노트는 언제 적는 게 좋나요?

    따자마자 한 번, 30분 뒤에 한 번, 그리고 가능하면 다음 날 한 번입니다. 카테나 알타처럼 시간에 따라 향이 완전히 바뀌는 와인이 흔하고, 코스타 브라운처럼 하루 뒤에 평가가 뒤집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Q. "타닌이 강하다"와 "떫다"는 같은 말인가요?

    거의 비슷하지만, 떫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고 타닌은 중립적인 관찰에 가깝습니다. 타닌이 강해도 과일 향이 충분하면 균형이 잡히고, 시간이 지나며 부드러워지기도 합니다.

    Q. 용어를 외워야 와인을 즐길 수 있나요?

    전혀 아닙니다. 다만 기록이 남으면 다음 선택이 쉬워집니다. "오크·바닐라가 좋았다"는 메모 하나가 다음 와인샵에서 실패 확률을 크게 줄여줍니다. 즐기기 위한 도구지 시험 범위가 아닙니다.

    정리하며

    여섯 병을 다시 훑어보니, 결국 시음 용어는 세 덩어리로 정리됩니다. 과일 향(플럼·블랙베리·스트로베리·트로피컬·그린애플), 통에서 온 향(오크·바닐라·버터·견과류), 그리고 촉감(타닌·산도·바디)입니다. 여기에 시간과 온도라는 변수를 더하면, 전문가들이 쓰는 노트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에 한 병 여실 때 딱 세 줄만 남겨보세요. 향 한 줄, 촉감 한 줄, 다음 날 느낌 한 줄. 그 세 줄이 쌓이면 어느 순간 와인샵에서 "저는 오크 강한 건 좀 부담스러워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기록은 인스타그램 @wine.with.u에 계속 쌓고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