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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을 한두 병씩 사서 바로 마실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건 좀 아껴뒀다 마셔야지" 하는 병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저는 그 상태로 꽤 오래 버텼습니다. 그러다 한 병을 제대로 망칠 뻔했고, 그제서야 보관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망칠 뻔한 이야기부터

    보관을 잘못해서 와인이 고온에 노출된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함께 두었던 다른 병들도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계획에 없던 코스타 브라운을 급하게 열었습니다.

    아…. 뭔가 맛이 간 건지, 더웠던 해라는 2021년도 특유의 맛과 향(뭔가 더위에 찌든 맛과 향, 살짝의 시큼한 향/맛도)이 나서 고온 노출의 문제인지, 21년도 빈티지의 특징인지 고민하면서 2/3 가량은 매우 아쉽게 마셨더랬다.

    다행히 하루 쉬게 하니 살아났지만, 마시는 내내 "이게 원래 이런 맛인가, 내가 망친 건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와인을 망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망쳤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 병의 진짜 맛을 영영 알 수 없게 되니까요.

    셀러가 필요한 시점은 언제일까요

    "와인 좋아하면 셀러 사야지"는 답이 아닙니다. 아래 중 두 개 이상에 해당할 때가 실제로 필요한 시점입니다.

    • 집에 사놓고 안 마신 병이 6병 이상 쌓여 있다
    • 그중에 10만 원 넘는 병이 있다
    • "이건 몇 년 뒤에 마셔야지" 하는 병이 있다
    • 여름에 집을 오래 비운다 (에어컨이 꺼진 실내)
    • 보관 장소가 주방·베란다·창가

    반대로 사는 족족 2주 안에 마시고, 대부분 2~3만 원대라면 셀러는 아직 이릅니다. 그 돈으로 와인을 더 사는 게 낫습니다.

    보관 장소 4가지 비교

    장소 온도 문제점 적합한 기간
    와인 셀러 12~15℃ 유지 비용, 자리 차지 수년 이상
    김치냉장고 5~8℃ 온도가 낮음, 냄새 배임, 눕히기 어려움 수개월
    일반 냉장고 2~5℃ 너무 낮고 건조해 코르크가 마름, 진동 수 주
    실온(한국 여름) 28~35℃ 사실상 파괴 며칠

    핵심은 이겁니다. 완벽한 온도보다 일정한 온도가 중요합니다. 코르크는 온도가 오르내릴 때마다 팽창하고 수축하면서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20℃로 계속 있는 것이 15℃와 28℃를 오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셀러를 산다면 — 용량 고르는 법

    가장 흔한 실수가 지금 가진 병 수에 맞춰 사는 것입니다. 셀러가 생기면 사는 양이 늘어납니다. 예외 없습니다.

    • 현재 6~10병 → 20병대를 사면 반년 안에 꽉 찹니다. 30~40병대를 권합니다.
    • 현재 20병 이상 → 50병 이상. 이 단계에서는 자리와 소음을 먼저 고민하세요.
    • 부르고뉴·샴페인 병이 많다면 → 표기된 수용 병수를 그대로 믿지 마세요. 그 숫자는 보르도 병 기준이라 어깨가 넓은 병을 넣으면 실제로는 20~30% 덜 들어갑니다.

    압축기(컴프레서) 방식은 냉각력이 좋지만 소음과 진동이 있고, 열전소자(펠티어) 방식은 조용하지만 실온이 높으면 목표 온도까지 안 내려갑니다. 한국 여름을 생각하면 거실에 둘 게 아닌 이상 압축기 쪽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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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살 거라면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1. 집에서 가장 온도 변화가 적은 곳을 찾으세요. 보통 북향 방의 붙박이장 아래칸이나 침대 밑입니다. 주방·베란다·보일러실은 최악입니다.
    2. 눕혀서 보관하세요. 코르크가 와인에 닿아 있어야 마르지 않습니다. 스크류캡은 세워도 상관없습니다.
    3. 빛을 차단하세요. 자외선은 와인을 삭힙니다. 상자째 두거나 천을 덮으면 됩니다.
    4. 여름에 집을 비울 땐 아이스박스에 넣으세요. 얼음 없이도 단열재 역할을 해서 온도 변화를 크게 줄여줍니다.
    5. 비싼 병은 아예 집에 두지 마세요. 와인샵 유료 보관 서비스가 셀러 값보다 쌉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몇 도부터 위험한가요?

    25℃를 넘기면 숙성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고 과일향이 잼처럼 뭉개집니다. 30℃를 넘기면 코르크가 밀려 올라오거나 액체가 새어 나오는데, 이 단계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Q. 한 번 더위 먹은 와인은 버려야 하나요?

    아닙니다. 위에 쓴 코스타 브라운처럼 하루쯤 냉장고에서 쉬게 하면 상당 부분 돌아오기도 합니다. 다만 코르크가 밀려 올라왔거나 라벨에 흘러내린 자국이 있다면 기대하지 마세요.

    Q. 셀러에 넣어두면 와인이 좋아지나요?

    모든 와인이 숙성되지는 않습니다. 시중 와인의 대부분은 출시 시점이 이미 마시기 좋은 상태이고, 오래 둔다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셀러는 좋아지게 하는 장비가 아니라 나빠지지 않게 하는 장비입니다.

    Q. 진동이 정말 영향이 있나요?

    단기 보관이라면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침전물이 있는 오래된 병은 진동으로 침전물이 계속 섞여 탁해집니다. 냉장고 위나 세탁기 옆은 피하세요.

    정리

    셀러는 와인을 좋아지게 하는 물건이 아니라, 망치지 않게 해주는 보험입니다. 그래서 판단 기준도 단순합니다. 망쳤을 때 아까운 병이 집에 몇 병 있는지.

    그런 병이 아직 없다면 셀러보다 와인을 더 사는 게 맞고, 이미 있다면 여름이 오기 전에 결정하시는 게 좋습니다. 저처럼 "이게 원래 이런 맛이었나" 의심하면서 마시는 건 꽤 아깝습니다.

    마신 와인들의 기록은 인스타그램 @wine.with.u에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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