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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다이닝바 주방 앞에 앉아 셰프가 도마질하는 걸 구경하면서 화이트 와인을 마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분당 정자동의 오마카세 바 '신독'에서 그런 저녁을 두 번 보냈습니다. 한 번은 뫼르소, 한 번은 크룩 샴페인이었죠. 그리고 얼마 뒤 판교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홍합찜에 이탈리아 화이트를 곁들이고 나서야 '화이트 와인은 그냥 가볍게 마시는 술'이라는 제 편견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이번 글은 실제로 마셔본 화이트 와인·샴페인 4병과, 비교 삼아 함께 마신 레드 1병을 음식과 함께 기록한 페어링 노트입니다. 산지도 부르고뉴, 피에몬테, 베네토, 샹파뉴, 바로사 밸리로 제각각이라 "화이트 와인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을 가진 분들께 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신독에서 만난 뫼르소 — 셰프의 손끝과 화이트 버건디
패트릭 자비예(Patrick Javillier)의 '레 클루조 뫼르소 2021'은 부르고뉴 뫼르소 마을의 단일 밭에서 나온 샤르도네입니다. 카운터석에 앉아 셰프가 생선을 손질하는 걸 보면서 마셨는데, 오크 숙성 특유의 고소함과 산미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뫼르소 특유의 버터리한 질감이 흰살생선·초밥과 특히 잘 어울렸습니다.
2. 같은 자리에서 다시, 이번엔 크룩 샴페인
얼마 후 같은 신독에서 크룩(Krug)을 마신 기록도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남긴 캡션은 이렇습니다.
분당 정자동 신독에서
크룩과 맛있는 요리들 🥂🍣🐟🍜🍧
댓글에는 "Kruggggg 👑", "❤️" 같은 반응이 달렸습니다. 뫼르소가 흰살생선과 조용히 어울렸다면, 크룩은 초밥부터 면 요리, 디저트까지 코스 전체를 관통하며 마실 수 있는 폭이 넓은 샴페인이었습니다. 같은 다이닝바, 같은 부르고뉴·샹파뉴 계열이지만 화이트 와인과 샴페인이 코스에서 하는 역할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3. 판교, 홍합찜과 수아베
판교 까페소시올로지에서는 피에로판(Pieropan) 수아베와 프랑스식 홍합찜 '물 마리니에르'를 함께 먹었습니다. 당시 캡션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에그인헬, 물 마리니에르(프랑스식 홍합찜)가 맛있는 곳.
홍합찜+화이트 와인 조합=👍👍👍👍👍
수아베는 베네토 지방의 가르가네가 품종으로 만드는 화이트로, 미네랄감과 산도가 도드라집니다. 홍합의 짠맛과 국물의 감칠맛을 산미가 깔끔하게 씻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뫼르소처럼 무게감 있는 화이트보다 오히려 이런 가벼운 화이트가 국물 요리엔 더 맞더군요.
4. 가야 로쏘-바스 — 이탈리아 화이트의 반전
같은 날 함께 마신 가야(Gaja)의 '로쏘-바스 랑게 2022'도 기록해둡니다. 샤르도네와 소비뇽 블랑을 블렌딩한 와인인데, 팔로워 한 분이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가야 와인들은 이태리 와인의 범주를 넘어서는 느낌이에요😍😍😍
이탈리아 화이트라고 하면 가볍고 캐주얼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가야의 화이트는 오크 뉘앙스와 밀도감이 있어 부르고뉴 화이트에 가까운 인상을 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병을 해산물보다는 크림 소스 파스타나 버터 향이 나는 요리에 더 추천하고 싶습니다.
5. 그날 함께 마신 레드는 오히려 아쉬웠다 — 토브렉 런리그
같은 날 가야와 함께 마신 레드도 하나 있습니다. 호주 바로사 밸리의 토브렉(Torbreck) '런리그 2020'입니다. 시라 중심에 비오니에를 소량 섞은, 이름값만 놓고 보면 그날의 주인공이었어야 할 병입니다. 하지만 실제 기록은 이랬습니다.
맛있었으나, 향과 맛의 지속력이 다소 아쉬웠던?
첫 잔은 분명 화려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향이 빨리 가라앉았습니다. 같은 자리의 화이트·스파클링 세 병이 시간이 갈수록 표정을 바꿔가며 즐거움을 줬던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비싼 레드 한 병보다, 성격이 다른 화이트 여러 병을 코스에 맞춰 바꿔가며 마시는 쪽이 그날은 더 만족스러웠습니다. 페어링은 결국 가격표가 아니라 '그 순간 무엇과 함께인가'로 결정된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6. 넉 줄로 정리하는 비교표
| 와인 | 산지·품종 | 특징 | 잘 맞는 음식 |
|---|---|---|---|
| Patrick Javillier 뫼르소 | 부르고뉴 · 샤르도네 | 오크 숙성, 버터리한 질감 | 흰살생선, 초밥 |
| Krug | 샹파뉴 · 블렌딩 | 깊고 넓은 풍미, 코스 전체 커버 | 초밥, 면, 디저트까지 |
| Pieropan 수아베 | 베네토 · 가르가네가 | 높은 산미, 미네랄감 | 홍합찜, 국물 요리 |
| Gaja 로쏘-바스 | 피에몬테 · 샤르도네+소비뇽블랑 | 밀도감 있는 오크 뉘앙스 | 크림 파스타, 버터 요리 |
자주 묻는 질문
Q. 화이트 와인은 다 해산물이랑 어울리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에 마신 수아베처럼 산미 위주의 가벼운 화이트는 해산물·국물 요리와 잘 맞지만, 뫼르소나 가야처럼 오크 숙성으로 무게감이 있는 화이트는 오히려 크림 소스나 버터 향이 강한 요리와 더 잘 어울립니다. 화이트 안에서도 스타일이 완전히 다릅니다.
Q. 샴페인은 식전주로만 마셔야 하나요?
크룩을 마셔본 경험상 아닙니다. 산도와 기포가 있어 코스 초반의 가벼운 요리부터 후반의 진한 요리까지 폭넓게 받쳐줍니다. 식전주로 한 잔만 마시기엔 아까운 샴페인이었습니다.
Q. 이탈리아 화이트는 저렴하고 가벼운 편 아닌가요?
일반적으로는 맞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가야처럼 유명 생산자의 화이트는 오크 숙성을 거쳐 부르고뉴급 밀도감을 내기도 합니다. 라벨만 보고 스타일을 단정하기보다 생산자를 확인하는 게 안전합니다.
Q. 집에서 페어링을 시도할 때 뭐부터 사면 좋을까요?
산미가 강한 화이트(수아베, 소비뇽 블랑 계열)부터 시작해서 해산물 요리에 맞춰보는 걸 추천합니다. 실패 확률이 가장 낮고, 이후에 오크 숙성 화이트로 넘어가면 차이를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다섯 병 모두 실제로 마신 기록이고, 같은 화이트 와인이라도 산지와 양조 방식에 따라 어울리는 음식이 이렇게까지 갈린다는 걸 다시 확인한 계기였습니다. 다음엔 레드 와인으로 비슷한 페어링 기록을 남겨볼 예정입니다.
더 많은 시음 기록은 인스타그램 @wine.with.u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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